그렇다. 많이 무섭다.

 

현관 밖으로 마지막으로 나가본 게 한 5일 쯤 된 것 같다.

 

원래도 소문난 집순이였지만 이렇게 강제적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게 된 이유가 있다. 바로 마스크가 없어서다.

 

 

 

 

 

이때가 1월 23일이었다.

 

점심먹으러 내려가면서 사람들이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사러 줄 선 걸 보며 "역시 홍콩사람들 줄서기 좋아하는건 알아줘야해" 하며 비웃던 게 언제인데...

 

이때만 해도 뭘 몰라도 한참 몰랐다. 바보같이 보여도 같이 줄 서서 샀었어야 하는 건데...

 

 

 

 

같이 일하는 똘똘한 아이들은 아마존 프라임으로 진작에 몇백 개를 쟁여뒀다. 그때까지도 난 아무 생각 없이 "뭐 그런가 보다" 하고 말았다.

 

그러다가 대란이 일어나고 나서야 발등은 커녕 허릿잔등이까지 불등이 떨어져서야 깨닿게 되었다.

 

홍콩사람들은 사스 경험이 있어서인지 전염병에 대한 준비정신이 철저하다는 것을...

 

 

 

 

설 연휴에 밖을 나가보니 99%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.

 

맨 얼굴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누군가 기침이나 재채기하는 소리가 나면 온 신경이 곤두서곤 했다.

 

그래서 부랴부랴 1월 끝무렵에 온라인주문을 했다.

 

미국 아마존에서는 이미 마스크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고 있던 와중에 어찌어찌 주문한 상품들도 줄줄히 취소되고, 심지어 지마켓에서도 주문이 다 취소돼서 깜짝 놀랐다.

 

수요에 따른 아마존의 알고리즘때문인지, 판매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, 몇 초 만에 상품 가격이 두세 배 오르고 물량이 소진되는걸 보고 세상이 얼마나 더 가까워졌는지 새삼 느껴졌다.

 

친구들이랑 여기저기 가격이 미치지 않고 재고가 남아 있는 곳을 찾아 일본이며 심지어 태국에까지 온라인 주문을 했다. 결국엔 거의 다 실패했지만.

 

 

 

 

어찌어찌 설 연휴가 끝나고 사무실에 갔더니 출근한 사람이 열 명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. 

 

인사부에서 매니저와 상의 후에 재택근무를 권고하는 이메일을 보냈기 때문이다.

 

나도 그날 이후로 쭉 재택근무를 했다.

 

어플로 배달음식을 시키고, 온라인 수퍼마켓으로 장을 보고, 하다 보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그럭저럭 생활이 가능했다.

 

그 와중에도 매일 회사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, 엊그제 우리 사무실 건물에 다른 회사에 확진자가 나온 뒤 회사에서 출근을 금지했다.

 

우한에서 첫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나와 멀리 떨이진 일이라고 생각했는데,

 

점점 나의 작은 생활반경에 가까워지는 게 목에 올가미를 조이는 것 같이 무서웠다.

 

 

 

 

어느 날은 왓슨스에서 다음날 마스크 재고가 입하된다는 메세지를 보고 사람들이 수천명 몰려들고,

 

또 다른 날은 다른 곳에서 마스크가 입고된다는 소식에 몇만 명이 밤을 새워 기다리는 걸 봤을 때에도 나갈 엄두를 못 냈다.

 

일도 바쁘지만, 마스크 없이 그렇게 사람들 많은 곳에 나갔다간 분명히 감염이 되고 말겠지 싶어서 말이다.

 

집에 갇혀있는 만큼, 사람들이 더더욱 소셜 미디어에 집착하기 마련이니 루머가 더욱 더 빨리 전염됐다.

 

대륙에서 도시간 내려진 폐쇄령 때문에 쌀이며 화장지 등 일상생활용품 수급이 불가능해질 거라는 소문이 돌고, 사재기가 더 심해졌다.

 

홍콩에서 가장 큰 Wellcome 수퍼마켓은 진작 배달불가를 알렸고, Park N Shop은 웹사이트를 열 때마다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.

 

 

 

 

 

아직까지는 대부분의 물품이 정상적으로 입고되는데 매일매일 사재기 현상으로 쌀, 라면, 화장지 등은 항상 품절 상태이다.

 

다들 집도 코딱지만한데 어디에 다 쟁여두는지 알 수가 없다. 

 

 

 

 

물론 유투브로 본 우한이나 다른 대륙의 도시들보다는 홍콩 상황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낫다. 

 

그래도 시민들의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아직 본토와의 국경을 열어두는 와중에는,

 

그리고 그에 반발해서 의료 종사자들이 파업중인 한, 감염되면 정말 x되니 몸을 사리고 또 사리는 중이다.

 

 

 

 

늦어도 다음 주에는 일본에서 주문한 마스크가 도착할 것이다.

 

방사능 입자를 마시든 일단 쓰고 봐야겠다.

 

 

 

 

P.S. 전염병 주식회사라는 게임 해보신 분? 진심 이 코로나바이러스 뭔가 게임 공략과 너무 똑같다;;;

 

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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krhk
수 - 몸은 홍콩에, 정신은 안드로메다에. 달리 명시되어 있는 않는 한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. 불펌금지. All content © 2015 Sumin Cho unless otherwise stated. All rights reserved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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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1. 여행이 가능하다면 한국에 들렸다가 홍콩에 여행가고 싶어서 찾아보다가.. 외국에서 혼자 살다보니 심심하고 외롭고 어쩌다 보니 오래된 글까지 다 읽어봤네요 ㅎㅎ 최근에 업로드해주신것도 엄청오래도셨네요..

    잘보고 갑니다
    좋은하루되세용~~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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